오늘날의 외과의사, 치과의사, 이발사가 하는 일을 모두 중세 유럽까지 당시의 이발사가 맡아 했던 사실을 아는가. 얼마 전 TV에서도 소개되어 알고 있는 이도 있겠지만, 어쨌든 할 수 있는 수술이 늘어나면서 외과의들의 단체모임이 왕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 흥미로운 역사의 이면이기도 하면서 직업적 세분화, 전문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일련의 사건이기도 한 듯하다.

패션은 어떠한가. 디자이너는 우븐, 다이마루, 니트로 나눌 수 있고, MD도 기획, 생산, 바잉, 영업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VM은 더욱 흥미롭다.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들이 19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리다가 IMF를 거치는 동안 VM 개념이 전반적으로 정착되어 일반화되었고, 이제는 매장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던 DP(Display)라는 말도 사라진지 꽤 된 것 같다.

지금은 작업행위 자체도 VM(Visual Merchandising), 작업하는 전문 인력도 VM(Visual Merchandiser)으로 부른다. 협의의 디스플레이 개념이 광의의 VM이 되기까지 만큼 매장의 비주얼적 수준은 상향되었고, 디스플레이 디자이너가 비주얼 머천다이저가 되기까지 만큼 직업적 업그레이드도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쇼윈도 구성과 장식만을 전문으로 맡아서 하는 ‘윈도 드레서(window dresser)’라는 별도의 직업명도 들려온다. 이들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붐을 이루며 등장한 전 세계의 수많은 셀렉트 숍 또는 멀티숍의 쇼윈도를 비롯하여 비주얼 머천다이징이라 불리는 상업 공간 디자인과 데커레이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외국에서는 인테리어 또는 공간미술 전문학교 등에서 ‘윈도 드레싱’을 교과목으로 다루기도 하는 등 윈도 드레서가 전문 업종으로 인식되면서 점점 그 입지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디스플레이 디자이너에서 비주얼 머천다이저로 직무 개념이 확대되고, 그 안에서 다시 윈도 드레서가 세분화, 전문화되는 현상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 떠오르고 있는 수퍼바이저(Supervisor)도 빼놓을 수 없겠다. 수퍼바이저는 매장의 개선점을 제안하고 매장운영에 관한 다양한 부문에서 매니저에게 지도·조언을 행하는 전문가라는 업무 특성 상, 현재는 기존의 MD나 영업부서, 일부 숍매니저나 VM 경력자들이 턴오버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 밖에도 스타일리스트, 숍매니저, 패션기자, 패션에디터, 패션디렉터 등 패션산업을 이끄는 숨은 역군들이 많이 있으며, 각자의 직군 내에서 다양한 의미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가끔(5년, 10년 주기인 듯) 미래의 유망직, 한국의 유망직 등 발표내용을 보면 전문성과 성취도, 자기발전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직종이 유망 직업으로 꼽히고 있다. 과거 사라진 직업들은 대부분 기계가 대체재로 등장한 경우가 많다. 이전에 매장 판매직원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관련기사를 본 기억이 있으나 사람의 감성 터치만이 해결 가능한 섬세한 부분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약간 생소한 직업을 살펴볼까 한다. 미국 패션계에서 부르는 ‘세일즈 어소시에이트(Sales Associate)’는 컨설팅, 판매, 프로모션 등을 기획하는 것을 비롯하여 브랜드의 성향에 맞는 다양한 판매처를 개발하고 거래 방법을 고안해내는 직업이다. 한국에서도 곧 그들을 볼 날을 기대해본다.